전신마비 가수 김혁건 "코로나 위기 아닌 기회로…포기 않길"

남궁소정 / 기사승인 : 2020-08-24 10:3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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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 '송곳' 등 꾸준한 음반활동에 보컬 강의까지
"장애 인식 개선·제도 보완…매일 '소확행' 느껴"
"제가 만든 온라인 강의 보실래요? 헤이 구글, 사무실 텔레비전 켜줘."

지난 21일 서울 성북구의 한 스튜디오. 록 밴드 '더크로스' 출신 가수 김혁건(39) 씨는 활동 보조사와 함께 온라인 강의를 편집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2012년 오토바이 사고로 사지마비 장애 판정을 받은 김 씨는 '위드(with) 코로나' 시대 평소보다 더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 그룹 더크로스의 메인보컬 김혁건 씨가 21일 오후 서울 성북구 작업실에서 유피아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폐활량도 비장애인의 3분의 1에 불과하고, 경추 손상으로 어깨 아래 모든 근육이 마비된 상태지만, 대학 보컬 강의·공연·모임 등이 모두 비대면으로 바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그는 마우스 대신 구글 인공지능(AI) 플랫폼을 작동시키는 명령어 '헤이 구글'을 불러 대학 강의 영상을 틀었다.

"처음에는 화질이 많이 떨어졌는데, 지금은 퀄리티가 괜찮죠?(웃음) 편집 프로그램을 5~6개 공부했어요." 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강의가 전부 비대면으로 진행되면서 오히려 더 바빠졌어요. 자료 수집하고, 파워포인트 만들고, 촬영하고, 편집하고…. 잘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도 느끼지만 성취감이 훨씬 커요."

그는 코로나19라는 위기가 오히려 '기회'라고 강조했다. 장애인들이 유튜버와 같은 1인 미디어 창작자로 대중들과 소통할 기회라고 말이다. "평소라면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과 섞이는 게 어려울 텐데, 지금은 비장애인들도 활동하기 어렵잖아요. 코로나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이 시간을 기회로 삼아 자기 계발을 해서 대중들과 가까워졌으면 좋겠어요."

2000년대 초반 '돈 크라이(Don't Cry)' '당신을 위하여' 등 히트곡으로 이름을 알린 김 씨는 지난달 2일 신곡 '송곳'을 발표하는 등 꾸준히 음반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엔 코로나19 사태로 한국척수장애인협회에 마스크 1만 장을 기부했다.

끊임없이 그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은 무엇일까. 그는 사고 이후 요양원에서의 경험이 컸다고 말했다. "요양원 옆자리에 저보다 3살 많은 식물인간 형이 있었어요. 눈도 못 뜨고, 대소변도 못 가리는데 어머님이 매일같이 형을 안고 주무셨어요. 얼굴 볼 수 있는 것 자체가 너무 행복하다고. 아픈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걸 깨닫고 도와야 한다고 느꼈어요."

▲ 그룹 더크로스의 메인보컬 김혁건 씨가 21일 오후 서울 성북구 작업실에서 직접 만든 영상을 보여주고 있다. [남궁소정 기자]

김 씨는 소수자와 약자 보호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다치기 전까진 장애인 콜택시에 대해서도 몰랐고, 발달장애인들이 사는 곳도 몰랐어요. 제가 약자가 되면서 알게 된 부분이 많고, 저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많으니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계속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시선은 좋지 않죠. 인식 개선과 법·제도적 보완이 꼭 필요해요." 그는 "최근 제가 방문한 미용실에서는 저를 무서워했어요. 슈퍼마켓은 좁아서 못 들어갔고요. 몸이 불편해서 하는 행동을 두고 눈여겨보고 계속 쳐다보니까 그 시선들이 참 힘들어요"라고 했다.

"그런 부분은 제가 열심히 활동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에요. 더 많은 장애인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법안들이 절실해요. 1층 가게에는 경사로를 만들고,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게끔 하는 등의 정책이 필요해요."

김 씨는 지난해 11월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 프로그램에 질문자로 등장해 장애인 활동 보조사가 주 52시간 근로시간제 특례업종에서 배제되면서 생기는 문제를 지적했다. 김 씨는 "당시 방송에서 말을 짧게 해야 했고, 하고 싶은 말을 전부 전달하지 못했어요. 대통령께서도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셨죠"라며 말문을 열었다.

"특례업종에서 배제되면 중증장애인들이 하루 3명의 활동 보조사를 써야 해요. 이들은 또 휴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쉬는 날이 있으면 평균 5명 사용해야 하는데 저 같은 최중증장애인들은 대소변을 못 가리잖아요. 1명 구하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2명 이상을 구하겠어요. 지금은 최중증장애인에 한해 정책이 보류된 상황이에요. 국가 개입이 없으면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죠. 활동 보조사를 국가에서 파견해 중증장애인들을 돌본다면 해결될 수 있겠으나 어려워 보여요. 정부는 노력하겠다고 하는데…."

▲ 그룹 더크로스의 메인보컬 김혁건 씨가 21일 오후 서울 성북구 작업실에서 유피아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김 씨의 삶의 목표는 뭘까. 그는 '행복'이라고 했다. "옛날과 달리 누워서 '안식년'을 보내고 있지만 그 안에서 행복을 찾고, 노래를 부르며 행복을 유지하고 싶다"는 게 김 씨의 목표다. 매주 유튜브를 통해 팬들과 소통하고, 순댓국·감자탕 등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귀여운 고양이를 보는 시간은 김 씨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그에게 코로나19 시국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많은 분이 저에게 죽고 싶다고 메시지를 보내요. 최근에는 아들이 5살인데 다쳐서 장애인이 됐다고…. 그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지치고 힘들지만, 그 안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하면 분명 좋은 날이 올 거라는 거예요. 행복한 일을 스스로 찾아내야 해요. 손발을 못 써도 입으로 그림을 그리고, 눈으로 타자를 쳐서 책을 쓸 수 있잖아요. 아픔과 좌절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유피아이뉴스+ / 남궁소정 기자 ngsj@upin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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